Tuesday, October 11, 2011

동사무소가 '예술'이네 화장실이 '작품'이네

  • ◇파주 북시티의 한길사 사옥.
  • 2003년, 건축이 사회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건축가들이 전면에 나서 새로운 개념의 문화 단지를 조성하는가 하면 과거 건축 디자인과는 영 상관 없던 동사무소·초등학교·주차장·고속도로 휴게소도 하나같이 ‘현상설계 공모’를 거친 건축가의 작품으로 속속 탄생하고 있는 것도 건축 바깥 세상에서는 관심거리다.
    건축시장이 극심하게 침체된 상황에서 건축의 사회적, 문화적 성격이나 이를 설계한 건축가에게 대거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건축 하면 건설 혹은 시공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견 건축가들의 ‘북 시티’, 신진들의 ‘헤이리

    잘해야 아파트 단지나 들어설 별 특징 없는 땅에 조성되고 있는 파주 출판문화도시(일명 ‘북 시티’), 또 통일동산 근방이라 접근성도 용이하지 않을 터에 문화예술 단지로 조성되는 헤이리 아트밸리는 1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마을 조성사업이다. 이 두 지역의 개발 사례는 건축문화 예술운동으로 평가될 만큼 화제다. 또 민간조합 형태로 사업자들과 건축가들이 공동으로 도시,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 ◇헤이리 아트 밸리의 마을 회관 격인 '커뮤니티 하우스'.
  • 조성룡·민현식·승효상씨 등 서울건축학교 조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른바 중견 ‘리딩’ 건축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북 시티는 전체 규모가 48만평에 사업비만도 1조원이 드는 프로젝트. 기존 환경을 살려 단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다리며 가로등까지 건축가의 디자인으로 꾸며지고 있는 디자인 도시이기도 하다. 250여채의 건물 설계가 완료됐고 보진재와 한길사에 이어 여러 출판사가 입주 대기 중이다.
    ‘산 속에 조성되는 예술촌’이라는 헤이리 아트밸리는 15만평 부지에 카페·갤러리·작업실·영화촬영소·기념관 등의 건물 300여채가 세워진다. 북 시티와 중복 참여하고 있는 건축가들이 더러 있긴 해도 김종규·김준성·민선주·조병수씨 등 비교적 젊은 건축가들이 주도하는 헤이리 아트밸리는 북 시티에 비해 좀더 자유롭고 실험적인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 ◇오래된 정수장 시설을 디자인의 일부로 끌어들인 한강 선유도 공원.
  • 북 시티가 장방형의 비교적 평평한 대지에 조성되는 반면 헤이리는 집중형의 구릉지에 조성되고 있어 지형상의 독특한 분위기가 젊은 건축과 신선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북 시티와 헤이리는 외국 건축가들도 협력자로 참여하고 있고, 건축가들이 모든 과정을 조정하는 코디네이터를 맡았다는 점에서도 한국 건축계에 하나의 전범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건축미 자랑하는 동사무소·고속도로휴게소·공원

    과거에는 건축적 관심 밖에 있던 동사무소도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김인철씨가 설계한 서울 행당1동 사무소는 ‘펼쳐지는 집’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개방적이고 조형성 강한 건물로 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젊은 건축가들이 강원도 철암의 폐광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재생시키기 위해 나선 것이나 금산인삼랜드 휴게소(이충기 설계) 등 이용자 중심의 공간구성과 환경친화적 배치가 돋보이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속속 등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건축이 지닌 사회성, 공공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와 조경가의 합작(조성룡·정영선)으로 한강의 선유도가 정수장에서 멋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것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 내 화장실.
  • 건축 디자인 붐

    요즘 들어 ‘건축 디자인 열풍’이라 할 정도로 건축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변화 때문이다. 이제 과거 개발 드라이브로 일관됐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건축이 삶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중이다. 또 눈이 높아진 대중은 또 일상 속 디자인에 엄청난 갈증을 느끼고 있으며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요즘은 건축가들끼리 디자인을 겨뤄 설계안을 정하는 건축 설계경기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미 공공시설은 대부분 이 방식을 쓰고 있고, 동네 노인정에서부터 해인사 신행(信行) 문화도량과 김대건 신부 기념관, 백남준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공모전이 쉴 새 없이 열리고 있다. 건축설계경기는 투명성, 공정성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건축가들의 자유로운 참여 속에 일종의 건축 축제처럼 치러질 수 있어야 하며, 디자인을 실험하는 장으로, 설계의 질을 높이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외국 건축가 전성시대?

    외국 건축가들의 국내 진출 역시 건축 디자인 붐에 영향을 미쳤다. 국내 초고층 건물들은 모두 외국건축가가 설계를 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건축의 서세동점(西勢東漸)은 서구 건축가들의 아시아 진입이 활발해진 1990년대부터 본격 전개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서울 강남의 교보타워가 완공되었고, 네덜란드의 렘 콜하스가 서울대 미술관을,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등이 삼성의 고급 아파트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이 세 건축가들은 삼성이 한남동에 조성하는 복지타운에 미술관이며 박물관, 커뮤니티 시설 등의 설계를 맡아 몇 년째 작업 중이다. 대기업들이 스타급 건축가를 선호하는 가운데 한 건설회사는 ‘세기의 산업 디자이너’라는 필립 스탁에게 인테리어를 맡겼다며 홍보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약에 따른 시장개방과 함께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국 건축가든 국내 건축가든 간에 우리 시대, 우리 땅에 걸맞은 집을 짓는 일에 주목해야 할 것이며, 우리집·우리동네·우리도시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건축 디자인 붐을 맞은 우리 사회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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